김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디지털 인문학 입문' 펴내
정보통신기술 접목한 인문학… 역사·현황·미래 방향 담아

김현(57)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국내 인문학 자료 전산화의 선구자다. 고려대에서 조선시대 성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동양철학 전공자이지만, 일찍이 컴퓨터에 눈을 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을 거쳐 조선왕조실록 CD-ROM 개발 실무를 지휘했다. 김 교수가 개발한 디지털 조선왕조실록은 역사 전공자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까지 조선시대에 눈을 돌리게 해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조선시대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김 교수가 정보통신기술(ICT)과 인문학을 접목한 디지털 인문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디지털 인문학 입문'(한국외국어대지식출판원)을 최근 냈다.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디지털 인문학의 역사와 현황, 미래 방향을 담고 있다.


디지털 인문학의 효시는 컴퓨터를 인문학 연구에 이용하는 '전산 인문학(Computational Humanities)'이다. 서양에서는 예수회 신부 로베르토 부사가 중세 라틴어 텍스트 1100만 단어의 색인을 전자적 방식으로 편찬한 것, 한국학에서는 미국 하버드대의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가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 명부인 '문과방목(文科榜目)'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것이 꼽힌다. 텍스트를 입력해 통계 처리하는 데 주력하던 전산 인문학은 정보통신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대규모 데이터를 집적한 후 의미 있는 정보를 뽑아내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과 그 결과를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시각화로 진전됐고 이때부터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오늘날 디지털 인문학은 특정 주제에 관한 방대한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를 모아서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수집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치중한다.

세계의 디지털 인문학은 전산학자들이 인문학 자료 전산화를 담당하는 1세대형(型)에서 인문학자들이 디지털 기술을 직접 활용하는 2세대형으로 넘어갔다. 한국은 1세대형은 앞서갔지만, 2세대형은 아직 초보 단계이다. 미국 인문학재단(NEH)이 2008년 디지털인문학지원단을 설치해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데 비해 한국은 2014년에야 한국연구재단이 디지털인문학 지원을 시작했다. 김현 교수는 "서양에서는 디지털 인문학이 위기에 놓인 인문학의 대안으로 중시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정부가 인문학을 직접 지원하면서 학자들이 필요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1990년대 말부터 문화콘텐츠 산업의 진흥을 추진하면서 떠오른 인문콘텐츠학이 당장의 성과를 중시하며 장기적 발전의 토대를 놓는 데 소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는 한국이 디지털 인문학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인문학자들이 디지털 독해(reading)뿐 아니라저술(writing) 능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인문학자들이 함께 작성하는 위키(Wiki) 콘텐츠 제작, 데이터와 데이터를 연결해주는 '온톨로지(ontology)' 등 기본 기술을 익혀서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 교수는 "40대 이하 인문학자들은 생존을 위해서도 디지털 인문학에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인문학도 디지털 알아야 살아남아",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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